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만 제국 (문단 편집) == [[튀르크]]인들의 나라? == 먼저 튀르크인들의 나라가 된 까닭부터 살펴봐야 한다. 11세기 셀주크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침공해 현 튀르키예 지역을 가져온 것부터 비롯되었다. 셀주크 제국은 튀르크인들이 세운 나라였고 많은 튀르크 인들이 현 튀르키예 지역인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함으로써 혈통이 섞인 민족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일단 [[튀르크인]]들이 형성한 나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 [[튀르키예]]의 민족주의적 성향의 사학자들이나 극우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무조건 오스만 제국을 튀르크족만의 민족국가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일단 군주의 모후들부터가 [[휘렘 술탄]]이나 [[쾨셈 술탄]], [[나크시딜 술탄]]등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그리스인]], [[슬라브인]], [[캅카스]]인([[조지아인]], [[체르케스인]] 등), [[알바니아인]]들이 상당수 였던지라 제국의 왕가는 비(非)튀르크계 혈통도 많이 섞였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을 세운 [[오스만 1세]]나 [[오르한]] 정도라면 모를까 후손으로 가면 갈수록 순수한 '튀르크인' 이라고 하기 어려워지며[* 사실 왕가고 일반 농민이고간에 여러 민족의 피가 마구 섞였기 때문에 '튀르키예인' 을 혈통이나 민족상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긴하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같은 경우도 고민하다가 혈통이 아니라 '튀르키에어를 사용하며 튀르키예에서 살아가면 튀르키예인' 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오스만도 당나라처럼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는 민족이고 출신이고 안 가리고 오직 능력에 따라 등용하고 활용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고향에서 헐벗은 소작농 출신의 아이도 능력만 인정받으면 이스탄불의 최고급 교육기관에서 수학하고 군주의 근위병이 되거나, 건축, 병법, 교육 분야의 능력자가 되거나, 심지어 고향에 지방관으로 부임할 기회나 군주 다음으로 높은 자리인 재상까지 오를 기회도 열려있었다. 당장 오스만 제국에서 유명한 사람들만 하더라도 순수한 튀르크계 혹은 이슬람 배경을 가진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제국의 고관들은 대부분 [[발칸 반도]]나 [[캅카스]] 출생들이었다. 오스만의 영토였던 동유럽 출신 인사들을 고관으로 기용된것만큼 흔하지는 않았지만 제국의 외부의 기독교 동네인 서유럽 출신 인물들이 관직에서 등용된 사례도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서 여러 차례 발견할 수 있다. 해적 출신들도 있었지만 당시 유럽의 상위 신분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 초빙되어 활동했던 것처럼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해와 기용된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18세기 오스만군의 군제 개혁을 이끈 프랑스 출신 훔바라즈 아흐메트 파샤[* 본명은 클로드알렉상드르 드본발(Claude-Alexandre de Bonneval).], 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활약한 독일 출신 메흐메트 알리 파샤[* 본명은 루트비히 카를 프리드리히 데트로이트(Ludwig Karl Friedrich Detroit).], 폴란드 출신 무스타파 젤라레딘 파샤[* 본명은 콘스탄티 보젱츠키(Konstanty Borzęcki).] 등이 있다. [[베네치아 도제]]의 서자로 [[쉴레이만 1세]] 시절 오스만에서 베이오울루라는 이름으로 오스만의 동유럽 토벌에 협력한 알비제 그리티(Alvise Gritti)의 사례도 있다. [[탄지마트]]를 시행하면서 서유럽인 초빙 후 등용은 더 늘어났다. ([[https://www.reddit.com/r/MapPorn/comments/780tn5/ethnicity_of_ottoman_parliament_deputies_in/|1908년 오스만 제국 의회 의원들의 출신 민족을 나타내는 지도]]) 동유럽, 북아프리카 영토가 독립, 혹은 서구 열강에 떨어지고 있던 제국 말엽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의회 의석들을 보면 142명의 튀르크인 의원들 외에도 [[아랍인]] 의원 60명, [[알바니아인]] 의원 25명, [[그리스인]] 의원 23명, [[아르메니아인]] 의원 12명, [[유대인]] 의원 5명, [[불가리아인]] 의원 4명, [[세르비아인]] 의원 3명, [[루마니아인|블라흐인]][* 동유럽에 거주하는 [[라틴족]]의 갈래. 말하자면 현대 [[루마니아]] 민족의 역사적인 명칭이라 봐도 되긴 한데, 사실 서로마 멸망 이후 수천년 동안 그 일대에 살던 라틴족들이 슬라브, 오스만 문화에 동화되어 정체성을 상실한 경우도 많고, 게다가 블라흐란 단어 자체가 루마니아를 구성하는 역사적인 3개 지방 중 [[왈라키아]] 중심적인 말이며, 또 발칸 반도 현지에서는 무식한 촌부를 지칭하는 경멸적인 단어로 사용 된 흔적도 있어 적어도 현지인, 학자들은 사용할 때 주의를 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의원 1명 등 절반 가량의 의석이 비튀르크인들이 점유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민족주의의 시대에 접어들어 그리스를 비롯한 피지배국들이 독립하던 시절에도 압뒬하미트 2세는 민족주의가 아닌 '''범이슬람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의 공용어를 아랍어로 정하고, 제국 내에 튀르크인보다 수가 많은 아랍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기까지 했다. [[아타튀르크]] 문서를 보면 당시에 대한 아타튀르크의 기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청년튀르크당의 혁명을 초래하기도 했다. 분명한 건 오스만 제국은 현재의 민족주의적 핀트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다민족,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보편 제국이었다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현재의 '''"튀르키예 공화국 영토 내에서 거주하고 튀르키예어를 사용하며, 튀르키예 문화 속에서 자랐으며 스스로를 튀르키예인으로 인식하는 자는 모두 튀르키예인."'''이라는 케말리즘적 튀르크 민족주의의 정의를 최초로 내린 사람인 오스만 제국의 사회학자인 지야 괵알프(Ziya Gökalp)는 [[자자족|자자계]] 출신이며,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의 국가인 독립행진곡(İstiklâl Marşı)을 작곡한 [[메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Mehmet Âkif Ersoy)는 알바니아계 출신이다. [[아타튀르크]] 본인도 그리스의 [[테살로니키]] 출신에다 금발벽안의 백인의 외모를 하고 있으며, 그의 동료이자 공화국 2대 대통령으로 제임하는 [[이스메트 이뇌뉘]]는 쿠르드인, 3대 대통령인 [[젤랄 바야르]]는 불가리아계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오스만 제국을 튀르크인의 민족국가로 정의하는 것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